컬쳐

정선아·차지연이 만났다, 역대급 캐스팅 '렘피카' 프레스콜

 20세기 초 유럽 예술계를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불꽃 같은 삶이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재탄생했다. 지난 26일 서울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 열린 뮤지컬 '렘피카' 프레스콜은 이 파격적인 예술가의 연대기를 강렬한 음악과 퍼포먼스로 선보이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 파리로 망명한 타마라가 생존을 위해 붓을 들었다가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는 과정은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한 여성의 치열한 투쟁기이자 자기 고백이다.

 

작품은 타마라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이 되어준 뮤즈 라파엘라를 만나며 겪게 되는 내면의 변화와 금기된 사랑을 대담하게 그려낸다. 안정적인 가정과 예술적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던 타마라는 결국 사회적 통념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2018년 초연 이후 2024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며 토니어워즈 노미네이트라는 성과를 거둔 이 작품은, 한국 초연에서도 원작의 파격적인 서사와 감각적인 연출을 고스란히 살려내며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기존 뮤지컬의 서정적인 문법을 탈피한 음악적 시도다. 작곡가 멧 굴드는 전쟁 이후의 차가운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기계적인 질감의 테크노와 팝,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감정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강한 비트와 반복적인 구조를 통해 인물의 욕망을 선언하듯 내뱉는 방식은 마치 현대적인 콘서트를 보는 듯한 신선함을 선사한다. 이러한 음악적 장치는 타마라 드 렘피카라는 인물이 지닌 강인하고 현대적인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무대 위 조명 연출 또한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입체적으로 시각화하는 핵심 요소로 활용된다. 타마라의 냉철한 예술적 집념은 초록색 조명으로, 그녀에게 자유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라파엘라는 다채롭고 화려한 색채로 대비시켜 두 사람의 관계성을 극대화했다. 극작가 칼슨 크라이저는 색채의 대비를 통해 타마라가 예술가로서 마주한 고뇌와 환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관객들이 인물의 서사에 시각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한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초호화 캐스팅은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타마라 역의 김선영, 박혜나, 정선아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당당한 여성 예술가의 면모를 그려냈으며, 라파엘라 역의 차지연, 린아, 손승연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채웠다. 특히 실제 부부인 김선영과 김우형이 극 중에서도 렘피카 부부로 출연해 보여주는 호흡은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배우들은 예술가의 본능적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이 무대를 '살아있는 공간'이라 칭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뮤지컬 '렘피카'는 단순한 인물 일대기를 넘어 예술의 본질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차가운 기계음 속에 녹아든 뜨거운 예술혼은 기존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새로운 미적 경험을 선사하며 한국 공연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시대를 앞서갔던 여성 화가의 대담한 여정을 담은 이 작품은 오는 6월 21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서 관객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며 뜨거운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