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원화값 8% 폭락하자…외국인들, 한국 미술품 '반값 쇼핑' 나섰다

 최근 급격한 원화 가치 하락이 국내 미술 시장에 예상치 못한 활기를 불어넣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올 하반기에만 달러 대비 8%가량 가치가 떨어진 원화 약세 현상이 해외 컬렉터들에게는 한국 미술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율 효과에 힘입어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등 국내 주요 경매사에 출품된 작품들에 대한 해외의 입찰 문의가 눈에 띄게 증가하며 시장의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오는 24일 서울옥션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여는 이브닝 세일은 이러한 분위기의 정점을 보여줄 전망이다. 소수의 초고가 작품만을 엄선해 저녁 시간에 진행하는 고급 경매인 이번 행사에는 총 26점, 추정가 총액 270억 원에 달하는 작품이 출품되어 2008년 이후 국내 단일 경매로는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번 서울옥션 이브닝 세일의 간판은 단연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의 걸작 ‘꽃다발’이다. 시작가만 94억 원, 추정가는 100억 원대에 이르는 이 작품의 등장만으로도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외에도 샤갈의 100호 대작 ‘파리의 풍경’을 포함한 총 4점의 작품과 김환기, 이우환, 김창열 등 한국 거장들의 대표작들이 나란히 출품된다. 생존 작가 중 최고가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작 ‘Less Trees Near Warter’ 역시 세로 2m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와 4억 8천만 원에서 8억 원에 이르는 추정가로 기대를 모은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원화 약세로 해외 컬렉터들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밝히며, 특히 샤갈과 호크니 작품을 두고 치열한 경합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해 뜨거운 낙찰 경쟁을 예고했다.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원화 약세는 한국 미술품의 가치를 재평가받게 하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현지 시간 17일 저녁 뉴욕 크리스티 이브닝 경매에 오르는 김환기 화백의 1971년작 추상 점화 ‘19-VI-71 #206’이 한국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경신할지에 전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추정가 750만~1000만 달러로 책정된 이 작품이 만약 900만 달러에 낙찰된다면, 수수료를 포함한 최종 낙찰가는 약 157억 원에 달해 기존 최고가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현재 최고가 작품은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53억 5천만 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05-IV-71 #200)’다. 이번 출품작이 ‘우주’보다 크기는 다소 작지만, 크리스티 측이 이미 ‘3자 보증’을 통해 낙찰 자체를 확정한 상태여서 새로운 기록 탄생은 이제 가격 문제만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오는 26일 열리는 케이옥션 11월 경매 역시 해외 컬렉터들을 적극적으로 겨냥하는 모양새다. 구사마 야요이, 데이미언 허스트, 알렉스 카츠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출품하여 해외 응찰을 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환기 화백이 1954년에 그린 ‘답교’(추정가 15억~25억 원)도 함께 선보이며 국내외 컬렉터 모두를 아우르는 ‘김환기 효과’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월대보름의 다리밟기 풍습을 따뜻한 색감으로 담아낸 이 작품의 출품은 원화 약세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한국 미술 시장이 국내외적으로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